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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 기독교의 뿌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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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ful♡ 2025. 4.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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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독교 역사: 기독교의 뿌리(2-1) 

2.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중간 시기

 

신약과 구약 중간 시기에는 군사적·정치적 ·종교적인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이후로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이물들 중 세계 무대에 등장했던 인물로는 알렉산더 대왕을 꼽을 수 있다. 기원전 336년 알렉산더는 20세의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인 아버지 필립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필립은 페르시아를 침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도시 국가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필립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인해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가 왕위에 등극하였다.  알렉산더는 유럽을 손아귀에 넣은 뒤 다리우스의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일련의 군사작전을 감행하였다. 

싸울 때마다 눈부신 승리를 거둔 그는 계속해서 남진하여 먼저 도시 티레를 정복했고 이집트마저 평정하였다. 그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였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제국의 새 통치자로 등극했으며, 기원전 32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리스로부터 인도의 북쪽 경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손에 넣었다.

알렉산더가 군대를 통해 이룩한 정복 사업은 실로 대단하였다. 또한 그리스 철학, 언어, 문화가 널리 퍼져 나감에 따라 그의 영향력은 계속 남게 되었다. 이른바 동방세계의 헬라화(hellenization)가 매우 철저하게 이뤄져, 알렉산더가 죽은 지 100년 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70명의 유대인들이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작업은 "70인 역(Septuaginta)"이라고 불린다.

신약성서 기자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경우에는 이 "70인역"을 이용하였다. 신약성서 기자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개념들로 번역된 "70인역"을 통해 애매모호한 히브리성서의 구절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의 자리는 수하의 두 장수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쿠스에게 이어졌다.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톨레마이오스, 바빌로니아를 평정했던 셀레우쿠스와 그 후계자들은 그들의 제국을 가로지르는 페니키아와 파레스타인 같은 중립 지역을 차지하게 위해 서로 싸웠다. 셀레우쿠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결국 기원전 198년에 이 지역을 손에 넣었다. 그들 중 한명이었던 안티오쿠스3세(안티오쿠스 대왕)의 치세 때 유대인들은 공정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에피파네스(안티오쿠스4세)는 제국 전체를 헬라화하고자 하였다.

 

 

출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기독교 역사

 

 

[2] 기독교 역사: 기독교의 뿌리(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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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 기독교의 뿌리(2-2)

[2] 기독교 역사: 기독교의 뿌리(2-2) 2.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중간 시기 1) 유대인들의 반란소수의 부유한 유대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환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안티오쿠스4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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